들어가면서
국익이 되는 외교
우리는 흔히 학교 폭력에서 폭력의 문제에서만큼은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멈춰’라고 할 수 있는 용기와 사회 참여를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신문지상의 학교 폭력을 통해 안타까운 현실들을 접한다. 그런데 학교 폭력을 행한 가해자들이 실정법의 죄를 받지 않고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일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눈을 가린 채 그 가해자 가족들은 ‘우리도 충분히 사죄했고 충분히 고통 받았다.’고 변명하는 방송을 보곤 한다.
가슴도 아프지만 울화 통이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느낀다.
요즘 전 세계가 요동을 치고 있다. 중동의 호르무즈해협은 금방이라도 전쟁을 할 것같은 태세다. 그리고 어제는시리아를 러시아가 공습해서 100여 명의 사망 또는 사상자가 생겨났다. 현지 국제 봉사자는 방송을 향해 더 이상 민간인을 죽이지 말라고 울면서 아우성치는 장면이 보도되고 있다. 남태평양 연안에서는 이미 오래전 중국이인공섬을 만들어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가 미국과 프랑스, 영국(호주)등에 의해서 더 이상의 진행이 멈춰진 상태이기도 하다. 또한 동북아에서는 어제(7월 23일) 러시아와 중국이 대한민국의 반공식별구역을 침범했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약 300여 발의 경고 사격을 하게 만들었고 그리고도 몇 차례 대한민국 영공을 유린한 후 유유히 돌아갔다. 국방부는 한국전쟁이래 공군비행기가 타국의 비행기를 향해 사격한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시절에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가? 구한말 역사를 통해 우리의 미래와 현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무슨 내용이 있는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공연예술 센터에서 맺어진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평화 조약이다.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8개국이 참가, 서명하여 1952년 4월 28일에 발효되었다. 조약의 발효로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한 일본의 군정기가 끝나고, 일본은 주권을 회복하였다. 이 조약에 의거 설계된 국제 질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한일 기본협약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기본협약이 되는데 이 중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문제는 전혀 거론이 되어있지 않다. 일본과 이미 구한말 묵인을하고 을사늑약을 조인시켰던 국제적 계략이었다. 그런데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맺어진 시기이다. 1951년 9월! 그 시기는 한반도가 온통 화염에 휩싸인 채 남과 북이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한참이던 때였다.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우리는 연합국 중 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협정의 승전국이 아니었으며 전쟁 승전품의 분배국도 아니었다. 그저 패전국의 한 지역이었기에 미국은 맥아더가 우리 대한민국을 점령하러 왔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 표현만으로는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하며 무릎이 까이도록 아스팔트 위를 뒹구는 심정이지만 그들은 점령군이었고 북한의 소련군은 김일성 북한의 건국자를 냉전시대의 파트너로 활용하였기에 소련군의 포고령은 아름다운 수식어를 나열하게된 것이다.
다음은 미군 맥아더 사령관의 포고령 전문이다.
To the People of Korea:
As Commander-in-chief, United State Army Forces, Pacific, I do hereby proclaim as follows:
By the terms of the Instrument of Surrender, signed by command and in behalf of the Emperor of Japan and the Japanese Government and by command and in behalf of the Japanese Imperial General headquarters, the victorious military forces of my command will today occupy the territory of Korea south of 38 degrees north latitude.
Having in mind the long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nd the determination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the Korean people are assured that purpose of the occupation is to enforce the Instrument of Surrender and to protect them in their personal and religious rights. In giving effect to these purposes, your active aid and compliance are required.
By virtue of the authority vested in me as Commander-in-Chief, United States Army Forces, Pacific, I hereby establish military control over Korea south of 38 degrees north latitude and the inhabitants thereof, and announce the following conditions of the occupation :
(해석)
조선인민에게 고함.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으로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 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항복은 우 제국(諸國) 군대 간에 오랫동안 속행되어온 무력투쟁을 끝냈다.
일본천황과 일본국 정부의 명령과 이를 돕기 위해 그리고 일본 대본영의 명령과 이를 돕기위해 조인된 항복문서 내용에 따라 나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리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인민은 점령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자기들의 인권 및 종교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는것을 보장받는다. 이러한 목적들을 실시함과 동시에 조선인민의 적극적인 지원과 법령준수가 필요하다.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으로 나는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그곳의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조항을 발표한다.(이하 생략)
다시 읽어봐도 가슴에 눈물이 흐르는 포고령 전문이다. 치욕이다. 특히 이 포고령에 나오는 “occupy’라는 단어는 점령하다라는 단어로 외교상 전쟁 승전국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말했듯이 조선인데도 불구하고 일본과 함께 패전국임을 알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일본국 또는 일본의 연합군이었던 셈이다.
자 그러면 이 대목에서 소련의 북한 점령 당시 포고령의 전문을 보자.
조선 인민들에게
조선 인민들이여! 붉은 군대와 연합국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략탈자들을 몰아냈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신조선 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뿐이다. 화려한 과수원은 사람의 노력과 고려(顧慮)의 결과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행복도 조선 인민이 영웅적으로 투쟁하며 꾸준히 노력하여야만 달성할 수 있다. 일제의 통치하에 살던 고통의 시일을 추억하라! 담위에 놓인 돌멩이까지도 괴로운 노력과 피땀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가? 당신들은 누구를 위하여 일하였는가?
이 대목까지만 보더라도 맥아더의 포고령과는 사뭇 다른 포고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패전국이 되었는가? 우리는 임시정부를 통해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독립운동을 해왔는데 왜 우리가 패전국이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직시 해야 한다. 국제법의 현실을. 이유야 어떻든 간에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 모든 국권을 다 빼앗긴 채 36년 간은 일본국의 통치하에서 일본국이 된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식도에 철조망을 씹어먹은 듯 가슴에 피가 흐르고 온 정신에는 핏대가 세워지고 창 밖이 노랗듯 멍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냉정하게 이해해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듯이 지금의 일본과의 분쟁은 막아내지 못한 우리 선조들의 나약함을 먼저 반성하는 것이 먼저일 때 침략자를 향한 분노는 냉정한 부국강병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1910년의 한일 합병(병합)과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1905년 을사늑(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조선(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고,
정미7조약으로 군대 해산을 당하고,
기유각서로 사법권과 감옥사무까지 잃은 대한제국은 결국 일본 제국에 결국 강제 병합되었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정미 7조약으로 일본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버팀목이라 할 군대를 해산시키면서, 허수아비 내각 수반인 이완용의 '조회문'을 통해 추진하는 수법을 썼다. 한국 황실이 자진해서 군대를 해산하는 것처럼 꾸며 반발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나중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정미7 조약은 이완용의 간괴로 이루어진 매국행위였지만 일본은 군대를 해산하면서 이른바 황제의 하사금이라는 것도 나누어 주었다. 하사에게는 80원, 1년 이상 근무한 병졸에게는 50원, 1년 미만 근무한 병졸에게는 25원씩이 지불 되었다.
이렇듯 모든 국사(國事)가 당시 조정은 모른 채 행정 유린이 가능한 상태임을 추측할 수 있다. 허술해도 이렇게 허술할 수 있는가!라는 탄식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될 시 그래도 우리 군대가 순순히 군복을 벗지 않은 전투 그것이 남대문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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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언론 르 프티 주르날에 실린 남대문 전투.-위키피디아 발췌) |
1907년 8월 1일 오전 11시에 동대문 훈련원에서, 맨손 훈련을 한다고 병사와 장교를 소집해 놓고 군부협판 한진창이 순종의 군대해산 소칙을 낭독했다. 그 후 즉석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계급장을 떼었다. 주위는 이미 일본군 헌병이 중무장한채 도열, 병사를 포위하고 있었다. 군대 해산은 8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1연대 1대대장 박승환이 자살하여 분노한 시위대 2개 대대가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였으나(남대문 전투) 결국 진압된 전투 이것은 대한 제국의 정규군이 일본에 대해 저항한 최초이자 마지막 항전이었다.
이렇듯이 작금의 일본과 겪고 있는 수출 분쟁은 제 2의 전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승리를 향한 냉정한 전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째, 끊임없는 국산제품 애용운동이다. 온 정신에는 일본 불매운동이라고 쓰고 우리는 국산 애용운동이라고 읽어야 한다. 민족적 감성만을 자극해서 일본과 대한민국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산업폐기물과 같은 건설자재를 재활용해서 사용하고 환경오염 탓하는 우매한 짓이다. 36년간 짓밟힌 강토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모든 분야에서 우리 생활 속에 묻어 있다.
둘째, 아름다운 국토에서 여름나기 운동이다.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해외로 돈을 쓰러 나간다. 이 참에 한 번 생각해보라. 내가 사용하는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살고자 하는 생각 그것이 애국이라고. 그래서 결국 지역경제도 살리는 이중 효과를 이참에 한번 만들어 나가자.
셋째, 이념을 버리고 합리와 상식적인 사고 방식으로 세상을 보자
대한민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우리와 다른 이해 당사자라는 것을 인식하자. 그래서 친중, 친일, 친미, 친러 같은 말은 항상 국제 사회에서 존재한 말이고 독도처럼 고립된 섬이 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국제적 말들은 함께 수식어처럼 붙게 된다는 것을.
그런 이해 속에 대한민국의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최고 우방이라고 말하는 미국은 일본을 식민지화하는 조약을 맺는다. 가나가와 조약이다.
일본은 이런 불평등 조약을 그대로 우리 강화도 조약으로 미국의 설움을 복수한다.
그리고 미국은 영국이 인도에 세우고 식민탈취의 주역으로 활용했던 동인도회사를 그대로 일본에도 세운다. 그리고 일본은 그 모양 그대로 동양척식 주식회사를 한국에 세운다. 그리고 땅 한 평 갖지 못하던 소작농들을 임금 노동자로 전환시킨다. 이것이 그들의 산업화라는 논리다. 산업혁명 중 산업화는 농노나 노예들이 해방되고 임금 노동자로 전환되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략자 일본이 정당한 댓가를 주었다고하면 개도 웃는다. 그들은 침략자였고 강탈자였고 인권유린국가였고 문화말살 국가였다.
그러나 1800년대 제국들은 모두 이런 형태를 띠면서 당사국들의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면 우리도 힘을 키워 약한 국가를 침략하는 것이 옳은가? 그것은 각자의 생각에 맡기겠다. 왜냐면 항상 전쟁과 평화는 공존해 왔으니 말이다.
현재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동북아 질서가 다시 재편되는 시절이다. 자본의 흐름이 바뀌고 원자재의 흐름이 바뀌고 종교의 우위가 바뀌기도 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단편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 옛날 흥선대원군이 그러했고 친일파들이 그러했고 나약한 수수방관자들이 그러했다. 모두 지혜롭지 못했고 미래를 강단있게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처럼 시절은 가겠지만 그런 자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금의 문제는 자본과 종교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역사는 그 두 가지의 조화와 충돌의 과정이었다.
한반도에서 할아버지가 살던 조국으로 국토를 되찾고 함께 살아가는 통일을 만들어 나가려면 이념의 역사를 청산하고 나라를 잃어버리기 이전의 대한제국의 시점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그런 사고로 이념의 고통에서 빠져나와 대한민국의 앞날을 설계할 수 있는 길이다. 이미 세상은 민주화의 세상이 되었고 자본주의가 승리했으며 공산주의는 사라졌다.
이제 동북아 모든 국가는 더 나은 국가를 향해 발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강대국들만이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는 좀 더 영악하고 실리적인 외교와 홍익인간, 재세이화 개념의 정치와 부국 강병에 힘써 나가면서 우리에게 좀 더 이로운 나라와 체제의 동질성을 만들어서 대한민국이 우월적이면서 당당한 외교를 하는 큰 항공모함을 운전할 수 있기를 애써 기대해 본다.(끝)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