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부는 바람
• 이야기를 시작하며
사흘전 "머지 않아 남북연락사무소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던 김여정의 담화후 "그럴리가 있겠느냐"던 어느 야당의원의 말을 비웃기나하듯 우린 오늘 2시 30분경 '검은 연기속으로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도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일이 하루도 채 지나기전에 벌어진 일이다.
"폭음과 함께 비참하게 파괴되었다"고 북한매체는 일제히 보도를 쏟아냈다.
담화내용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 김여정은 언니의 미소를 지닌 평화의 메신저에서 대남협박의 주역으로 변신하며 파국의 선봉장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우리 언론은 물론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앞다퉈 매시간 속보를 쏟아내고,청와대는 긴급 NSC를 소집하는등 발걸음이 다급하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같은 얘기를 하며 이어질 다음 뉴스를 기다린다.
• 북한은 무엇을 원하는가?
NYT는 '북 연락사무소 폭파,남북관계 종말의 전조'라고 긴급 보도했다.
"2019년 2월 제2차 북미회담후 빈손으로 돌아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좌절감이 이런 방식으로 표출되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 제3,4차 남북정상회담 및 9.19군사합의 이후 대북조치를 위해 설립된 한미워킹그룹의 존재가 오히려 남북관계의 개선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견해와 상당부분 그 궤를 같이한다.
북한의 이러한 도발은 단순한 '서운함'의 문제를 넘어선 듯하다.
전통적 '통미봉남' 전술하에서 미국과의 대화에 체제유지의 희망을 걸면서도,경제협력에 관해서는 한미워킹그룹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는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즉 미국주도의 북한경제제재를 알면서도 트럼프와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희망해왔으며 동시에 우리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 경제협력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에 경제적인 협력을 제공한다면 이는 곧 한미공조의 균열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북한에겐 '꿩먹고 알 먹는'일이 될테니 자연 우리를 압박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 흔들리는 대한민국,방향을 잃은 '운전자론'
판문점 연락사무소 폭파,비무장지대 북한군 상주,대남비방 방송재개와 삐라살포,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시설의 군사시설화,이어지는 군사합의 파기...
그 뒤로 국내와 해외 언론 매체들의 비난보도와 절망섞인 논평 그리고 섣부른 억측이 이어질 것이다.
"더 이상의 추가도발을 하지마라"는 경고의 메세지를 보낸 미국은 트럼프의 대선정국에 행여 걸림돌이 될까봐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며 한발짝 물러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깜짝 놀란 일본은 제집지키기에 분주하고,존재감을 상실한 아베정부는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프고,예상치못한 감짝쇼에 놀란 중국은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어른 흉내를 내고 있다.
여대야소의 절대적 약세정국의 돌파구로 이용하려는 야당은 '운전자론'의 순진함을 비웃으며 북풍에 대한 비난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다.
빨간 불이 늘어가는 주식시장,텅빈 슈퍼마켓 진열대등을 떠올리며 전쟁을 생각하는 국민들이 하나 둘씩 늘어갈테고,코로나19로 대한민국으로의 복귀를 꿈꾸었던 해외동포들은 그 결정을 미루게 될 것이다.
• 반전의 카드,위기는 또 다른 기회이며 시간은 우리편이다.
2020년 5월, 불과 며칠전까지 우린 선물처럼 다가온 '평화'을 상상하며 많은 꿈을 꾸었다.
남북평화철도로 유럽을 여행하고,도보로 또는 저전거로 파주 자유로를 따라 북으로 떠나고,곧 착공될 동해북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을 출발해 강릉을 거쳐 제진. 두만강까지 국토종단을 하는 꿈,금방이라도 아침뉴스로 나올 것 같았던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우린 행복했다.
그럼 이제 우린 이 꿈을 접어야만 하는가?
다시 꿈을 이어갈 반전의 카드는 어디에 있을까?
과연 있기는 한걸까?
김정은은 온데간데 없고 김여정만 내세운 파상적이고 동시다발적인 공세에서 반전의 카드를 본다.
'손해보는 장사'임에도 이를 진행하는 그들의 내부사정에서 그 반전의 카드가 있음을 본다.
오히려 이상황을 등에 업고 트럼프 대선정국을 이용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대미외교에서 '통미봉남'을 극복할 반전의 카드가 있음을 본다.
개성공단 입주상인들의 절박한 외침에서 북한의 아픈 속을 달래줄 반전의 카드가 있음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당황하지않고 담담히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바로 그 눈빛에서...
시간은 우리편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참아내고 있는 북한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런 이유로 긴장도를 높이는 각종 도발을 이용해 우리 정부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이에 우린 원칙을 지키며 명분을 잃지않고 실리를 챙기는 의연한 대응을 통해 시간을 벌어야한다.
여기서 승패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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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영 천안 FC 전 구단주/현 광화문시대 대표 |
• 글을 끝내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고대 서양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 피웠던 로마는 수많은 전쟁과 파괴를 반복하며 지금의 유럽문화의 기초를 만들었다.
일제36년 강점기를 극복하고 남북전쟁을 거치며 폐허와 동족상잔의 아픔을 극복한 우리는 코로나19를 이겨내며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섰다.
로마는,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체되고 오히려 후퇴된 현상황 극복을 위한 외교.안보라인의 교체가 필요할 것이다.
기존 남북합의를 무시하고 대북전단살포등 도발의 단서를 제공한 탈북단체의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고,야당은 국회로 복귀하여 국민을 위해 본연의 정부비판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집권여당 의원들의 신중한 메세지 관리를 당부드린다.
• 평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폭파음에 놀란 대성리 마을 주민들은 다시 일터로 복귀할 것이다.
곧 먹구름이 걷히면 푸른 들판은 누런 황금빛으로 바뀌며 탱탱한 알맹이를 뽐낼 것이다.
이번에 수확이 보잘것 없어 실망스러워도 다음에 우린 다시 씨를 뿌려야 한다.
그리하여 수확의 기쁨에 들뜬 농부들은 땀을 닦으며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옹기종기 모여앉아 막걸리 잔을 나누며 오늘을 회상할 것이다.
2020.6.17.
시커먼 연기속으로 내려앉는 우리의 '평화'를 바라보며